살며 살아가며

안나카레니나/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민음사1~3권

elisha2672 2019. 9. 27. 07:32
#독서후기
#안나카레니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민음사1~3권

*두 결혼
나는 이 소설이 표면적으로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과 죽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레빈과 키티의 성장하는 사랑과 결혼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생각을 한다. 읽으면서 이건 주인공이 레빈과 키티라는 생각을 했다. 바빠서 세어보지는 못 했지만 지면을 할애한 면이 안나쪽이 많은가, 레빈 쪽이 많은가 세어보고 싶다. 해설에서 불륜의 파국과 결혼의 행복을 대조하는 병렬구조라는 비평에 공감한다.
그런데 처음 이책의 가제가
'두 결혼'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음~

*상대방의 마음 읽기
이 소설에서 감동받은 또 한 가지는 서로의 얼굴빛을 보고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한 순간 스치는 얼굴의 변화를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을 아주 세밀하게 적어놓았다. 실제로도 그럴까? 나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에 둔하다. 생각 뿐 아니라 전체의 느낌에도 둔하다. 머리가 바뀐 것, 옷의 변화, 미묘한 얼굴색의 변화, 그런 것을 어떻게 읽어낸단 말인가? 그런데 톨스토이는 그런 잠깐 스치는 변화 속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주인공들을 그리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요?

*첫문장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라는 첫문장이 인상적이다. 나는
행복한 가정은 소통이 잘 되는 가정이고 불행한 가정은 소통이 되지 않는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위해 배려해주는 가정.

* 당신은 레빈과 같은 남자인가, 브론스키 같은 남자인가?
당신은 키티와 같은 여자인가, 안나와 같은 여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1. 키티와 레빈이 성장하는 사랑과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부분은?
① 결혼에 난관이 있었으나 극복하였다. ②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준비하는 키티의 모습이다. 레빈은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굉장히 이질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나와는 전혀 다른 삶과 삶과의 연계성이 없는 동떨어진 것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키티는 굉장히 의연하게 동요 없이 적극적인 개입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이런 모습에 남자라면 기대고 싶어질 것이다.③ 마음을 나눈다. 부부는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 안나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 세 시의 연인’이라는 불륜드라마의 여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한 드라마이다. 그 중에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더 소중한 것을 버린다면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하는 독백이 나온다. 그 대사가 가슴에 남았었다. 또한 얼마 전 읽은 ‘마음사전’에서 ‘소중한 사람이 점점 중요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러나 우린 중요한 약속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을 저버려서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안나가 아주 소중하게 여겼던 아들을 데리고 왔더라면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나가 죽기 직전에 두통이 있으니 아무도 들이지 마라 했지만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브론스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오기를...여자들이란 그런 존재이다. 말과 마음이 다른, 그리고 갈대이다.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존재. 남자같이 굳건한 마음이 없나보다.

3.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이 소설에서는 브론스키가 바람둥이로 나오긴 하지만 브론스키도 키티 같은 여자를 만난다면 레빈과 같이 성장하는 사랑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난 안나 역시 키티와 다른 여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안나는 첫 결혼에서 아들만 끔찍이 사랑하는 여자였다. 가정생활도 잘 했다. 나이 차이가 16살이나 나는 남자를 만난 것이 오래 결혼생활을 지속하지 못한 한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갈 뿐...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과연 사랑인가 논하고픈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다’라고 결론 내린다. 사랑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 삶에도 사람 수 만큼의 다양한 삶이 있듯이 사랑에도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나가 자살할 수밖에 없이 치닫게 한 것이 브론스키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브론스키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대부분의 사람이, 특히 남자가 사랑에 홀딱 빠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삶의 모습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브론스키가 안나를 잘 돌보지 않았고 사랑이 식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맞다. 안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들이었는데 이것을 깊이 고려해 주지 못했다. 처음 기차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만났을 때 브론스키의 어머니와 안나가 기차에서 이야기할 때 안나는 아들 얘기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들이 그녀의 삶, 자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은 파국을 맞은 것이다. 안나 역시 브론스키의 마음을 의심하고 자기의 마음을 터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안나가 이혼에, 아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더 많이 드러냈더라면 브론스키는 지겨워했을까? 
귀찮아했을까? 부부라면 매일 함께 잠자리에 들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온갖 생각들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귀찮고 버거운 일일지라도 그랬다면 안나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선택한 안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절망적인 선택을... 인생을, 전부를 걸어 버린 그 사랑에 절망한 안나의 마음을...

4. 내가 ‘안나’라면 운명적인 만남이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젊었을 때라면 처음엔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자녀를 키워야 하니까. 그러나 아이가 성장한 후에는 내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라면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사랑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을 위해 맞춰주는 노력을 할 때만이 성장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도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노력하며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이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사람을 좀 더 이해하게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면도 있으리라...그것이 어렵다.